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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①] 철근 잇는 커플러, '최저價'에 밀린 '안전'
[기획특집①] 철근 잇는 커플러, '최저價'에 밀린 '안전'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5.04.28 0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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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러 시장 급성장 불구, 제품 신뢰는 성장세 '역행'
턴키 하도급∙최저가 발주로 악순환 생태계 '품질 뒷전'
KS 등 품질 검증 기반 부재...무분별한 제품 혼용 여전
품질 개선 대안 제도적 구축...수요처 인식 전환 '절실'

철근은 건축물의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자재다. 건축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의 KS 인증 여부를 따지는 것은, 웃돈의 값을 치르더라도 안정적인 품질에 대한 신뢰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건축재 시장에서 ‘안정적인 품질’은 곧 ‘안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철근을 연결하는 커플러(coupler)는 어떠 한가. 

커플러는 철근 길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연결 방식의 요구로 등장했다. 시공의 효율성 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안전성을 높이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년도 커플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커플러가 쏟아졌다. 하지만, ‘커플러 제품에 대한 신뢰는 시장의 성장세를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최저가 중심의 거래관행이 커플러 시장을 퇴보 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발주(수요)업계가 최우선의 구매조건으로 ‘최저가’를 제시하고, 공급업계는 커플러의 품질을 희생해서라도 최저가 조건을 맞춰내는 악순환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커플러 시장의 경쟁요소가 ‘초저가’에 집중되는 사이, 묵묵하게 고품질 커플러의 자존심을 지켜오던 우량기업들은 거래흐름에서 배제되고 있다. 경기침체로 ‘묻지마’ 최저가 경쟁은 치열해 졌고, 건설자재의 신뢰회복 숙제는 더욱 커졌다. 
 

잊혀진 품질, 철근 커플러 시장의 문제는 무엇인가?

깐깐하게 따져 사는 철근…대충 사는 커플러?!

철근을 잇는 커플러의 종류와 모양은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커플러는 철근과 마찬가지로 외형의 기호를 따질 제품이 아니다. 커플러가 각양각색인 중요한 이유는 제품 표준화의 미비, 즉 한국산업표준(KS)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철근은 제품의 외형부터 기계적 품질, 생산기반 검증, 시판품 조사까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또한 건축구조에 적합한 강도에 따라 SD300~SD600의 기본 강종에 내진용(S)과 용접용(W)까지 품질의 최적화 이루고 있다. 

철근과 철근을 연결하는 커플러의 역할을 고려할 때, 철근과 커플러는 동일한 품질의 최적화가 당연하다. 다양한 철근 강종과의 최적화는 물론, 안정적인 품질에 대한 신뢰조차 갖기 힘든 커플러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다. 
 

최저價 줄 세우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품질은…'뒷전' 

시장의 최저가 경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KS 인증 품질을 기본적으로 확보한 상태에서 최저가 경쟁을 벌이는 철근과, 품질 인증 없이 최저가 경쟁만 벌이는 커플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커플러 구매(발주)에서, 공급업체나 제품을 특정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성적서를 요구하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가격'이다. 커플러 시장에서 품질의 변별력을 따질 기준이 없다 보니, 도를 넘는 최저가 구매가 성행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품질도 ▲공급의 안정성도 ▲사후처리 여부도 따지기 힘든 수입산 커플러가 국내산 커플러를 밀어내는 현실이 이상할 게 없다.

중국산 저가 커플러는 국내산 동종 제품보다 30%~40%나 낮은 가격에 납품될 정도다. 문제는 이들 커플러의 비정상 가격이 모든 시장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커플러는 국내산 유명 제품으로 납품하고 가격은 수입산에 맞춰 달라’는 막무가내 발주가 나올 만큼 비상식의 시장으로 전락했다.  
 

무분별한 제품 혼용…국내산으로 둔갑하는 수입산

커플러 시장에서 불법적인 꼼수가 성행하게 됐다. 품질 불문 최저가 입맛을 맞추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저가 소재를 쓰는 것은 공공연한 현실이다. 아예 수입산 완제품 커플러를 수입해서 납품하는 국내 커플러 업체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는 공급원 승인을 받는 커플러 샘플은 국내산을 보내고, 실제 납품은 국내산과 수입산을 혼용하거나 슬그머니 수입산으로 대체하는 불법적인 사례까지 등장할 정도다.

다양한 형태의 철근 커플러가 거래되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정보를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수입산 커플러라고 무조건 싼 것도 아니다. 특정 제품의 대량 구매가 아니면, 수요처들의 최저가 입맛을 맞출 수 있는 단가 확보가 어렵다. 낮은 단가를 맞췄다 해도, 소재 대응부터 제품의 구색이나 납품 대응까지 거래 리스크를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손실을 떠안기도 한다. 최저가만 따져서 커플러 납품업체를 선정하고 공사를 진행하다, 거래사고가 터지고 서야 신뢰할 수 있는 공급선을 찾는 시행착오도 부지기수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이 품질을 좌우한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제대로 된 생산기반을 갖추고 신뢰할 수 있는 품질관리를 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비상식의 저가 납품에 대해서는 의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커플러 부실 납품, 안전의 또 다른 사각지대로 '고착'

안전을 위해 도입했던 커플러가 안전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2010년대 중후반 커플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커플러 시장의 부실한 실태가 더욱 크게 부각됐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진행했던 커플러 실태조사에서, ▲커플러 체결길이 부족 등 시공불량 ▲시방기준 미준수 및 불량제품 사용 ▲공급원 승인을 받은 업체의 타사제품 납품 ▲품질 기준에 미달하는 외국산 강봉을 소재로 사용하거나 커플러 규격과 맞지 않는 철근 가공장비로 나사산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부실사례가 지적됐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난립한 커플러 업체와 최저가 구매에만 초점을 맞춰온 수요업계 모두 커플러 시장의 자정력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과거 커플러 시장에서 지적됐던 품질 논란과 부실 납품 등의 문제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연재 예정 -

[기획특집②] 철근 잇는 커플러, '최저價'에 밀린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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