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수요 부재...설비투자∙인력관리 운영 계획 불가
'줄어든 파이 어떻게 나누느냐'...가공업계 사활 고민
상생과 협업 가치로 불황 극복...악순환 굴레 벗어나야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불황의 2회차, 2025년 철근 시장에 대한 공포가 크다. 유통시장보다 한 발 늦게 불황의 파도를 맞았지만, 철근 가공산업은 유통보다 빨리 벼랑 끝에 섰다. 장치산업과 노동집약 산업의 취약함이 철근 가공산업의 불황 체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건설-제강 턴키거래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철근 가공. 무너져 내리는 철근 가공산업의 현실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Q> 2024년 철근 시장은 ‘역대 최저 수요’와 ‘역대 최대폭의 수요감소’의 충격을 동시에 겪은 한 해였다. 철근 가공 일선에서 보낸 2024년은 어떠했나?
A> 2024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의 시간이었습니다. 적어도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근 시장 관계자 누구도, 겪어보거나 상상하지 못한 수요 감소를 겪었습니다. 최소한의 수요가 확보되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시장활동이 불가능해 졌고, 철근 가공업계 역시 근본적인 시스템이 무너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던 2024년의 수요 감소 충격을 겪으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만 하다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충격적인 한 해를 보낸 철근 가공업계는 ‘심리적 부도’와 같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Q> 2024년 철근 가공시장에서 상징적인 변화나 현상을 꼽는다면?
A> 모든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철근 가공시장에서 상징적인 변화를 꼽자면, 먼저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번째는, 외주시장의 실종입니다. 900만톤~1,000만톤 규모의 철근 시장에서 급성장을 이뤘던 공장가공은 ‘1차 수주’와 ‘2차 수주’ 업체가 보완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하지만 1차 수주 흐름이 끊기면서, 소위 ‘외주’라 부르던 2차 가공시장이 실종되는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현재의 수요 상황에서는, 외주가 사라진 1차 가공시장도 반토막 가동률에 시달릴 정도입니다. 2차 가공 기반의 붕괴로 인해, 향후 철근 가공시장의 수요 대응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두번째는, 연간 가공단가 체계의 위기입니다. 철근 가공시장은 지난 2022년부터 연간 단위의 가공단가를 적용해 왔습니다. 턴키 시장이 급성장 하면서 안정적인 철근 수요대응의 한 축을 가공산업이 맡게 됐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도입된 연간 가공단가 체계는 상생의 안전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수요감소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철근 업계는 수익악화의 불길을 가공시장으로 돌렸습니다. 안정적인 납기와 품질을 담보하던 연간 단가체계가 흔들리면서, 철근 가공시장은 어렵게 확보한 신뢰의 기반을 위협받게 됐습니다.
Q> 2025년의 철근 가공시장은 어떻게 보는가? 각별히 주목하는 이슈는?
A> 2025년 올해는 더 심각한 상황이 걱정됩니다. 이미 체력을 소진한 가공업계가 시장의 충격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여타 관련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올해 철근 가공산업은 수주, 생산, 하도급체계, 생존 등 전반에서 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당장 1월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신규 수요’와 ‘기존 수주물량’이 동시에 바닥을 드러내면서, 철근 가공시장이 막다른 길에 들어섰습니다. 수요가 실종된 철근 가공시장은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게 됐고, 어렵게 운영되더라도 출혈수주로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그 여파로, 철근 가공업계는 설비투자와 인력관리 등 운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습니다. ‘대부분 철근 가공장들이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올 한 해의 관심사는, 단연 수요회복 여부입니다. 건설경기가 언제쯤 살아나고, 그 온기가 철근 시장에 전해질 지를 간절한 바람으로 지켜보는 것이죠. 가공 턴키 시장이 어렵게 지켜온 기반을 완전히 잃기 전에, 회복의 신호가 전해지길 기대할 뿐입니다.
Q> 최근 년도 철근 가공시장에서는 포스코 코일철근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다. 포스코가 합류한 코일철근 시장은 어떠한가?
A> 코일철근은 철근 가공시장에서 필수 자재가 됐습니다. 특히 급변하는 건설시장의 긴급 발주를 대응하기 위한 생산성 확보가 필수적이고, 최근 년도에는 건설사의 복잡가공 대세 때문에라도 코일철근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 코일철근이 철근 가공업계의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요소 입니다. 주춤했던 코일철근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는 효과를 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코일철근 시장이 커지는 만큼 가공업계는 의도치 않은 부담을 떠안게 됐습니다. 직선철근 가격이 급락하면서 코일철근의 교환 가치가 떨어지고, 그로 인한 손해도 가공업체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문제가 커졌습니다.
사실 코일철근을 사용하는 목적과 효과는 건설사에 집중됩니다만, 건설업계는 원가절감을 위한 복잡가공만 발주하고 필수 자재인 코일철근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코일철근을 공급하던 제강사들도 코일철근의 문턱을 낮추긴 했지만, 생산원가 상승 등으로 가격조정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철근 가공업계는 코일철근을 직접 구매하는 수요처이지만 '수요처'로서의 지위를 누리진 못합니다. 건설사나 제강사로부터 가공물량을 따내야 하는 임가공 업체로서의 지위가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죠. 철근 가공업계가 코일철근의 거래구조를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 속사정도 여기에 있습니다.

Q> 철근 가공은 대단위 설비와 인력 등 비탄력적인 고정비 부담이 큰 대표적인 산업이다. 최근 년도 원가상승을 역행한 '가공단가'와 '경기불황' 사이의 갈등이 클 것 같다.
A> 요즘도 언론 매체를 보면, ‘공사비가 대폭 늘어나 건설시장이 어렵다’고들 하는데…적어도 철근 시장에서는 솔직히 공감하기 힘든 얘기입니다. 철근 원철 가격은 이미 2021년 급등 이전으로 돌아간 데다, 철근 가공단가 역시 최근 년도 원가상승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기존 단가보다 한참 내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듯이, 철근 가공시장은 철저하게 주문자(발주처) 위주로 형성됩니다. 변수가 많은 건설현장의 발주는 들쑥날쑥하지만, 가공장의 현실은 그러지 못합니다. 최근 년도 들어서는 인건비, 기계설비 유지비용 뿐만 아니라, 공장임대료나 리스자금 상환 등 자금 운영의 부담이 눈덩이로 불어났습니다.
‘줄어든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철근 가공업계의 사활이 걸린 고민이 될 듯 합니다. 더 큰 적자를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저가수주에 나서는 선택 또한 절박한 갈등이죠. 건설-제강-가공의 주체가 어렵게 이뤄낸 상생의 기반을 무분별한 저가거래로 무너트리지 않을까 걱정이 큽니다.
Q> 철근 가공 프로그램(RBMS) 개발과 소모품 공동구매 등 생존을 위한 활로 찾기도 성과를 내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철근 가공업계가 자체 개발한 RBMS(ReBar Management System)는 가공현장의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RBMS는 현재 무료로 배포하여 시험 사용이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 3월부터는 유료화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RBMS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ERP 및 MES를 구축하고, 조합원사의 업무편의 및 원가절감. 그리고 조합의 수익창출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즉, 철근 가공업계가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자생력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해당 RBMS의 유료화로 일정 비용 부담이 발생하겠지만, 거의 원가수준으로 책정해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보다 경제적인 효과를 충분히 확보할 것입니다.
공동구매 역시 가공업계의 자생력을 높이는 일환입니다. 가공조합 홈페이지(http://kosfic.or.kr)에 공동구매 쇼핑몰을 개설한 상태이며, 작년 12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아직 초창기이고 2개 품목으로 출발하다 보니 활발한 상황은 아닙니다만, 많은 조합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매력도 크고, 일정 수량 이상에서는 철근 가공업계에 최적화하는 주문 생산도 가능해 점점 역할과 실익이 커질 것으로 봅니다.
Q> 최악의 불황에서 고군분투 하는 철근 가공업계와 나누고 싶은 공감은?
A> 철근 가공산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업계 분들께 깊은 공감과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다만 무분별한 저가수주에 경각심을 갖는 것 또한 소중한 생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가공업계는 발주처인 건설사나 제강사와의 관계에서 을(乙)의 입장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건설발전에 기여하는 철근 가공산업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또한 대단히 아쉬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철근 가공업계 스스로 자존감을 지켜가고, 생존을 위한 협업으로 지금의 고비를 지혜롭게 극복해가야 할 것입니다.
Q> 공존의 생태계를 위해 건설사나 제강사 등 발주처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A> 상생과 협업의 가치는 각 구성원이 온전히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철근 가공이 공사현장 밖에서 이뤄지다 보니, 발주처의 이해도 부족하고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철근 가공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건설사나 제강사, 가공사, 금융기관 등 누군가 폭탄을 짊어지는 정도의 리스크로 비유되기도 하죠. 또한 철근 가공단가는 건설현장의 원가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공기를 좌우하는 매우 예민한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제강사나 건설사의 어려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어려움을 함께 분담하지 않으면, 향후 초토화된 가공산업의 복원은 요원한 길입니다. 제강사나 건설사는 원가절감을 위해 저가 발주를 하고, 가공업계는 생존을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서는 악순환의 굴레가 지속되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공원가를 함께 분석하고 적정한 가공단가를 산출해 무조건적인 저가 발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즉 제한적인 최저가방식인 예정가격의 발주나, 합리적인 연간 가공단가를 적용하여 발주하는 것도 공존을 위한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